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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정보/독일

베를린 장벽 건설 시작 1961년

by 페라리 에이스 202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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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베를린 장벽 건설 시작과 관련된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보겠습니다.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베를린 장벽 건설이 시작된 이유

베를린 장벽은 1961년에 건설이 시작됩니다. 독일이 세계 제2차 대전에서 패전한 것은 1945년입니다. 그리고 동독과 서독이 각자 정부를 출범하고 본격적인 분단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949년입니다. 그런데 왜 베를린 장벽은 1961년에 건설되었을까요? 

독일이 분단되고 초기에는 동독과 서독은 서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대외적으로 선전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합니다. 그에 비해 동독은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로 인해 서독을 경제적으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공산주의 사회는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동독 주민들은 서베를린을 통해서 탈출하는 인구수가 늘어갑니다. 베를린의 지리적 위치가 동독 지역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탈출하는 데 있어서 용이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탈출하는 군인
탈출하는 군인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기 전에는 동서베를린의 경계를 철조망 정도로 두었기 때문에 위 사진과 같이 국경을 지키던 동독 군인까지 탈출에 성공하기도 했었습니다. 

독일은 날씨가 좋지않고 석유와 같은 돈이 되는 천연자원이 없거나 부족한 나라입니다. 독일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인적자원이 가장 중요한 자원입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한 기술력으로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도 교육과 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수출을 하는 국가인 점에서 독일과 유사합니다. 

1949년부터 1961년까지 서베를린을 통해서 탈출한 인구수가 약 270만 명에 달합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다보니 다급해진 동독 정부가 급조해서 1961년에 만든 것이 베를린 장벽입니다. 

동독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서독 스파이를 막기 위해서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공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서베를린을 통한 동독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서 장벽이 건설된 것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동서베를린 경계만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것이 아니라 서베를린을 삥 둘러싸서 장벽이 건설되게 됩니다. 서베를린이 육지의 섬처럼 장벽으로 둘러싸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서베를린을 둘러싼 브란덴부르크 주가 동독 지역이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서베를린을 통해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서울을 경기도가 둘러싸고 있는데 경기도가 공산권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 지도
베를린 장벽 지도

베를린 장벽의 길이는 약 155km 이며 높이는 3.6 미터입니다. 넘을 수 있는 높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베를린 장벽 앞에 서 보시면 장벽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탈출이 용이한 곳은 벽을 2개 쌓는 구간도 있었고 중간에 충분한 이격거리를 두고 곳곳에 초소가 있었습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이 시작되면서 동서 베를린의 왕래와 소통은 더욱 어려워졌고 장애물은 1989년까지 존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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